“AI 시대에 더 필요한 건 ‘모호함’을 견디는 힘… 만화 편집자가 알려주는 관찰력 기르는 법”

관찰력을 키우는 법, ‘가설’부터 시작하라…만화 편집자 사도시마 요헤이의 『관찰력 기르는 법』

일상 속 작은 변화를 포착하는 재미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따스해진 햇살이 점점 강해지고, 사람들의 옷차림이 가벼워지며, 봄꽃이 지고 푸른 잎이 무성해지는 순간처럼,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세상의 미묘한 변화를 관찰하는 일은 창의력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일본의 유명 만화 편집자 사도시마 요헤이가 쓴 『관찰력 기르는 법』(원제: 観察力の磨き方, 2021년 출간·국내 2023년 번역)이 바로 이런 ‘관찰의 기술’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이다.

사도시마 요헤이는 2002년부터 10년간 일본 3대 만화 출판사 고단샤에서 편집자로 일하며 『드래곤 사쿠라』, 『배가본드』 등 굵직한 작품들을 다뤘다. 2012년에는 창작자 에이전시 ‘코르크(Cork)’를 설립해 10년 넘게 작가들을 키우는 데 집중해왔다. 20년 이상 만화 작가들과 호흡을 맞추며 깨달은 핵심은 “좋은 창작자는 관찰력이 뛰어나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 깨달음을 책으로 풀어냈다.

좋은 관찰은 ‘인풋과 아웃풋’을 동시에 높인다

사도시마는 관찰력을 “모든 능력으로 이어지는 도미노의 첫 번째 블록”이라고 정의한다. 관찰력이 좋아지면 특별한 노력 없이도 일상에서 질 높은 정보(인풋)가 쌓이고, 이는 감성으로 이어져 깨달음의 질과 양을 높인다. 결국 아웃풋(창작물)의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선순환이 시작된다는 설명이다.

그가 말하는 ‘좋은 관찰’과 ‘나쁜 관찰’의 차이는 명확하다.

– 좋은 관찰: 사물에 대한 가설을 세우고, 실제 상태와 가설의 차이를 발견하며 가설을 계속 수정하는 과정
– 나쁜 관찰: “이미 다 안다”고 판단해 가설을 수정하지 않는 태도

뉴턴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과정이 대표적이다. “왜 사과가 땅으로 떨어졌을까?”라는 단순한 질문에서 시작해 ‘지면이 사과를 잡아당긴다’는 가설을 세우고, 이를 끊임없이 관찰하며 법칙으로 정교화했다. 저자는 “관찰은 가설을 세우고 수정하는 사이클”이라고 강조하며, 이 과정이 세상을 발전시켜왔다고 주장한다.

 관찰력 기르기의 시작, ‘가설 세우기’

가설을 잘 세우는 방법으로 사도시마는 두 가지를 제시한다.

1. 디스크립션(Description) 쓰기
눈에 보이는 것을 감상 없이 객관적 사실만으로 말로 표현하는 연습이다. 예를 들어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명화 《우유를 따르는 여인》을 그는 이렇게 묘사했다.
“그림 한가운데에 하녀가 서 있고, 테이블에 놓인 볼록한 점토 항아리에 양팔을 사용해 우유를 정성스레 조금씩 따르고 있습니다. 테이블에는 에메랄드그린 색상의 테이블보가 덮여 있고, 다양한 빵이 놓여 있습니다.”
이렇게 단순한 사실 묘사만으로도 자연스럽게 “벽 타일에 그려진 큐피드의 의미는?”, “여인은 사랑과 어떤 관계일까?” 같은 가설이 떠오른다.

2. 다른 사람의 생각 참고하기
모든 배움은 따라 하기에서 시작된다. 영화 예고편이나 추천평을 먼저 보고 나만의 가설을 세운 뒤 작품을 감상하면, 가설과 실제의 차이를 즐기며 더 깊이 관찰할 수 있다.

 나쁜 관찰을 이해해야 좋은 관찰이 가능하다

저자는 좋은 관찰만 강조하지 않고, ‘나쁜 관찰’을 피하는 법도 자세히 다룬다. 관찰을 방해하는 대표적인 요소는 인지 편향(편견)과 감정이다.

– 인지 편향 : “여기에는 없다”는 기존 믿음 때문에 바로 옆에 있는 물건을 못 보는 경우, 또는 나라마다 무지개를 7색·6색으로 다르게 인식하는 사례처럼, 기존 지식이 관찰을 왜곡한다.
– 감  정 : 짜증 날 때와 기분 좋을 때 같은 햇빛을 다르게 느끼는 것처럼, 감정이 관찰의 필터가 된다.

사도시마는 이 둘을 ‘벗을 수 없는 안경’으로 비유하면서도, 이를 역으로 활용할 것을 권한다. 편견이 들 때 의식적으로 반대 정보를 찾고, 감정을 “지금 내가 무엇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가”를 알아차리는 도구로 삼으라는 것이다.

 모호함을 받아들이는 용기, ‘언런(Un-learn)’

책 후반부에서 저자는 관찰을 ‘언런(Un-learn)’으로 재정의한다. 이미 아는 것을 내려놓고 모호한 상태로 머무르는 행위라는 의미다. 특히 AI가 지식을 대체하는 시대에 “모호함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더욱 중요해졌다고 강조한다.

“좋은 관찰에는 정답이 없다. 물음과 가설의 무한 반복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좋은 관찰을 계속하면 우리는 영원히 ‘모르는 채’로 남을 수 있다.”

 결국 관찰의 원동력은 ‘사랑’

사도시마가 책 끝에서 가장 강하게 강조하는 것은 ‘사랑’이다.
“아이를 볼 때 우리는 장래를 단정 짓지 않고, 아직 많은 가능성이 있다고 믿으며 판단을 멈춘다. 사랑의 시선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좋은 관찰은 ‘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보는 것이다.”

관찰력을 기르고 싶은 사람이라면, 먼저 가설을 세워보고, 편견과 감정을 도구로 삼으며, 모호함 속에 머무르는 용기를 가져보라. 사도시마 요헤이가 20년 만화 현장에서 얻은 통찰은 창작자뿐 아니라 일상을 더 깊이 느끼고 싶은 모든 이에게 유효한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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